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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일 월요일

Player History - 2. Clayton Kershaw

Clayton Kershaw

포지션 : SP
입단 : 2006년 1라운드 7번 (Los Angeles Dodgers)
수상내역 : MVP 1회, CY 4회, GG 1회, All-Star 10회
명예의 전당 투표 : 2032년 헌액, 1차 98.9%
영구결번 : #22 (Los Angeles Dodgers)
2018년 이후 수입 : $252,350,000
2018년 이후 타이틀 : 최다이닝 2회(2020, 2023), 탈삼진 2회(2020, 2023), WAR 1회(2020), 이닝 당 출루 허용율 1회(2020), 9이닝당 최소 볼넷 3회(2019, 2020, 2023), 9이닝당 최다 삼진 1회(2020), 최다 피홈런 1회 (2025)

Milestones (11)

선발 : 513
승리 : 234
상대타자 : 13,196
상대타수 : 12,391
이닝 : 3324.2
자책 : 1,051
삼진 : 3,629
WAR : 98.1
rWAR : 103.0
완투 : 33
완봉 : 19

Kershaw being Kershaw. 게임에서는 LAD에서 11시즌을 보낸 뒤, 2019년에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가 계약기간 만료 후 FA로 양키스에 가더니 커리어 막판에는 급기야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행보를 보이면서 원클럽맨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 그래도 뭔가 보정이 있는지 11년간 누적 성적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LAD에서 무난하게 영구결번되었고, 2031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후보등재 1차만에 98.9%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당연히 다저스 모자를 쓰고 들어갔다.

플레이 이후의 커쇼를 말하자면, 더 길게 괴물같은 커리어를 이어갈 수도 있었으나 에이징 커브와 때를 같이하여 찾아온 부상으로 그 이상의 누적을 쌓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 3000IP-3000K를 달성한 선수에게 누적이 아쉽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사실 그 이상의 페이스도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에 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우선 2021년 팔꿈치 골절로 5개월간 아웃되면서 시즌을 조기마감했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2024년에는 4월에 어깨 염증으로 2개월간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더니, 복귀 직후인 6월에는 특히 노장 투수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11개월간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 뒤에 돌아온 커쇼는 이미 평범한 기량의 노장 투수가 되어 있었고, 커리어 마지막해인 2026년에는 프리시즌 기간인 3월에 복근 통증으로 한 달 가량 쉬어야 했다. 당연히 부상 이후 기량은 계속 하락하여 나중에는 리그의 대체선수급 투수로 전락하였다. 이 상태의 커쇼를 영입한 샌프란시스코는 어지간히 커쇼를 써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3년 재계약을 체결하여 팀에 잔류한 현실과는 달리, 커쇼는 2018년 이후 옵트아웃을 행사하고 QO를 거절하며 FA 시장에 나왔다. 이적시장 최대어인 그에게 팀을 구하지 못할 걱정은 없었고 사실상 관심사는 2억 달러 이상의 메가딜을 성사시키느냐 여부만 남아 있었는데, 어메이징 메츠가 6년 $199,000,000 달러에 마지막 시즌 바이아웃 7백만 달러로 계약을 끝낼 수 있는 팀 옵션이 붙어 있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2억 달러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이 상할 계약도 아니었으니 양측 모두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긴 셈이다.

메츠에서의 성적은 앞서 말한 장기부상만 아니었으면 전성기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2021년 이전의 두 시즌은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면서 27승 18패, 495.2이닝, 460삼진 등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사실 계약 첫 해에는 커쇼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활약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2년차에는 그야말로 제5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6년만에 사이 영을 탈환했다. 사이 영 홀더로서 나쁘지 않은 페이스로 2021시즌을 시작했지만 불의에 찾아온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고, 적지 않은 나이로 불안감을 안겼으나 그 다음 해에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규정이닝을 채우는 것은 기본으로 깔고, 35세의 나이로 탈삼진 타이틀을 거머쥐며 7.4WAR을 기록했다. 커쇼라서 커리어 하이가 아니었을 뿐 이름을 지우고 보면 그야말로 몬스터 시즌을 보낸 것이다. 뉴욕 메츠에서 5년간 기록한 성적은 55승 41패, 방어율 3.12. 896.1이닝 1,053삼진, 조정방어율 142, 28.6WAR 등이다. 31세에서 35세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대단한 활약을 펼친 셈이다.

하지만 커쇼의 다음 시즌은 36세. 언제 꺾여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35세 시즌의 활약을 보면 그냥 남은 계약을 이행했어도 이미 2억달러 몸값은 한 상황이라 손해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팀옵션이 있다면 일단 행사하고 보는 AI답게, 이런 몬스터 시즌을 보낸 커쇼에게도 바이아웃은 바이아웃대로 지불하고 QO를 날리는 어메이징한 오프시즌이 이어졌다. 옆동네 노장투수를 매의 눈으로 부러워하던 양키스가 달려들어서 3년 $70,200,000 달러에 마지막 시즌 베스팅 옵션으로 걸어둔 계약을 체결했다. 연 평균 수령액은 $23,800,000 달러였으니, 36세 투수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래도 Kershaw being Kershaw였으면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몸이 터져버렸다. 첫 시즌은 사실상 통으로 날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재활 후 복귀한 두 번째 시즌의 커쇼는 평범한 5선발급으로 기량이 하락한 상태였다. 그래도 28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면서 로테이션의 한 자리는 맡아주었지만, WAR 0.2로 어째 다쳐서 날린 지난 시즌의 0.4보다도 떨어지는 성적을 냈다. 원흉은 역시 양키 스타디움의 흉악한 파크팩터와 커쇼 자신의 부진이 결합된 홈런왕 커쇼 모드. 11승 4패라는 투승타타의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남겼지만, 규정이닝에 아쉽게 진입하지 못한 건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HR/9가 2.3이나 되었다. 그래도 커쇼는 커쇼라서 볼넷을 주느니 안타를 맞는 스타일의 피칭을 이어갔는데, 문제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안타 중 41개가 홈런이었던 것이다. K/9는 12년만에 9.0을 사수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6.9로 폭삭 떨어졌다. 부상으로 인한 스터프의 하락이 삼진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가운데에도 이닝 당 볼넷 수는 변함이 없었는데, 그만큼 공격적인 피칭을 유지했다는 의미이겠으나 구위가 받쳐주지 않은 공격적인 피칭이 양키 스타디움의 타자 친화적 특징과 결합하여 최악의 결과를 냈던 것이다. WAR의 관점에서 보면 양키스는 언제든 그냥 올릴 수 있는 투수 대신 $47.6m을 지출하여 커쇼를 기용하고 0.6승을 더 거둔 꼴이다. 이로써 먹튀 확정. 다만 커쇼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는 양키스의 이 때 행보가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운한 재난이라고 보는 편이 공정할 것 같다. 어찌보면 5년 전에 메츠가 계약할 때와는 달리 36살의 커쇼와 계약하는 구단은 마지막 1년 정도는 버리더라도 한 시즌이나마 잘 해주기를 기대했을 텐데, 하필 그 해에 팔꿈치가 터져버렸으니.

베스팅 옵션은 당연히 충족되지 않았고, 38세 시즌을 맞이하게 된 커쇼는 베테랑 한파를 몸소 체험하였으나, 그래도 레이스가 3년에 $10,560,000 달러를 제안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38세 시즌이 결과적으로 커쇼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는데, 일단 더 줄어든 스터프로 인해 타자와 승부 자체가 되지 않았고, 그나마 알동의 투수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음에도 피홈런은 소폭 감소했을 뿐이었다. 결국 불펜으로 돌려지다가 시즌 중반에 방출되었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커리어의 유일한 세이브가 이 시절 기록되었다는 정도? 은퇴 수순을 밟고 있던 커쇼에게 마지막으로 접근한 구단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커쇼도 이렇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최소연봉 계약에 도장을 찍고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5경기에 나와 9.1이닝을 소화하고 2승을 기록했으니 마지막 마무리로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셈이다. 베이 에어리어의 바닷바람 덕분인지 피홈런도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볼삼비가 1:1로 균형을 맞췄다는 점이 극심한 노쇠화를 방증할 뿐.

은퇴 직전까지도 WAR 음수 시즌이 없었지만, 양키스 입단 이후의 행보는 돈 내놔라 먹튀야 수준이었다. 하지만 LAD, NYM에서 보인 16년간의 활약은 그를 전설로 만들었고, 샌프란시스코의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그는 LAD의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1차에서 98.9%의 득표율로 간단하게 입성에 성공했다. 게임이 시작된 이후에는 사실 LAD 선수라기보다는 NYM의 선수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양키스와 계약하기 전에도 이미 3,000이닝과 3,000탈삼진을 진작에 넘은 상태이기도 했고, 사실 뭐 이렇게 다쳐서 훅 갈지 알았겠냐만 양키스 입단 이전에도 이미 커쇼는 전설적인 선수가 되어 있었다. 전설을 데려와서 먹튀의 전설을 쓴 양키스의 입장이 좀 많이 곤란해졌을 뿐이다.

4회의 사이 영, 2회의 MVP, 10회를 꽉 채운 올스타까지 수상내역도 완벽한 와중에 깨알같이 골드 글러브까지 끼어있다. 다만 우승반지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이는 게임 상에서 순전히 Eureka에 입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JAW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Standards, HoF Monitor 등 명전과 관련된 모든 기준을 충족했고, 게임 시작 전에 이미 비인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게임 시작 후에도 한동안 비인간적인 성적을 이어갔다. 다만 300승은 고사하고 250승에도 미치지 못한 누적이 조금 아쉬운 정도? 그래도 200승-3000이닝-3000삼진은 넘겼으니 이 누적이 모자라다고 할 것은 아니고, 통산 방어율도 2.85로 마감했는데 조정방어율로 보면 151, 즉 동시대 다른 투수들보다 50%이상 더 자책점을 억제했다는 이야기니까 이걸로도 커쇼가 왜 커쇼인지 보여주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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